[도시산책자] 역사탐방길로 복원…종묘 둘러싼 순라길

작성일 : 2018-12-24 17:42 작성자 : 이유진

서순라길, 동순라길 그리고 종묘
▲ 서울 종로구 순라길 풍경 [정병혁 기자]

 

순라길을 처음 들은 것이 이번 여름이다. 도시산책자 칼럼 취재를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때 해방촌 구둣가게 주인이 순라길도 한번 가보라고 했다. 친구도 최근에 그곳에 공방을 열었고 새롭게 조성되는 길이니 한번쯤 취재해 볼만하다는 의견이었다. 수첩에 적어두고 잊고 있었다. ‘순라(巡邏)’는 조선시대 도둑과 화재를 막기 위해 돌던 야간 순찰을 말한다. 순라군들은 밤 10시 무렵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종묘와 궁중, 도성 둘레를 순찰했다. 그중 종묘를 둘러싼 길을 순라길이라고 붙인 이유는 창덕궁 순찰을 담당했던 좌순청이 지금의 종로3가역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로3가역 11번 출구에서 직진하다가 종묘광장공원이 보이는 곳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서순라길이 시작된다. 오른쪽으로 동묘의 돌담을 끼고 창덕궁이 있는 율곡로 방향으로 걷는 서순라길은 도심 한가운데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한적했다. 

 

 

▲ 순라길 거리 상가들 [정병혁 기자]


주택과 상가가 뒤섞인 서순라길을 천천히 걸었다. 귀금속 상가를 지나자 카페, 맥주집, 빈티지 옷가게, 식당, 꽃집, 소품가게, 액세서리 가게가 이어진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쇼윈도는 도시산책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산책자의 걸음은 무심해 보일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욕망과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액세서리 가게 앞에서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목걸이과 귀걸이를 보며 어떤 디자인이 나에게 어울릴까 가늠해 봤다. 당장 들어가서 살 것도 아니면서 가격까지 확인한다. 오픈 시간이 남은 맥주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얼굴을 유리창 가까이 들이대고 안을 들여다봤다. 테이블 위에 냅킨과 포크가 세팅되어 있다. 작고 아담하다. 누구랑 오면 좋을까, 잠깐 상상해본다. 이 집 커피 맛있겠다. 한 잔 마시고 갈까? 망설이다 지나쳤는데 이번에는 와플 가게가 나타났다. ‘서순라길’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와플 가게이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벌써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커피가 포함된 와플 세트를 시키고 둘러보니 연령대가 다양하다. 쫄깃한 와플을 먹고 다시 걸었다. 가끔 종묘 돌담 위를 쳐다본다. 담장 너머 키가 큰 겨울나무가 버티고 있다. 


율곡로와 만나는 곳에 이르러 잠깐 어디로 갈까 망설였다. 원남동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큰길과 차단된 통로를 걷는다. 완만한 내리막 길이다. 원남동까지 내려가려다가 다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이번에는 종묘 돌담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 동순라길이다. 동순라길은 더 한적했다. 작은 빌딩들과 주택이 뒤섞인 동네였다. 무슨 연유로 이곳에 조명설비업체가 몰려있는지 알 수 없지만 ○○조명이라는 간판이 종종 보였다. 작은 목공소를 만났다. 유리 너머 단정하게 놓인 그릇장을 들여다봤다. 하필 이런 곳에 목공소를 열게 되었을까? 아마 문이 열려있었다면 들어가 구경을 한다는 핑계로 넌지시 물어봤을 것이다. 

 


▲ 종로성당 [정병혁 기자]

동순라길이 종로와 만나는 지점에 종로 성당이 있었다. ‘포도청 순례길’ 이라 새겨진 대리석 앞에 멈춰 한참을 봤다. 갑오개혁 이전까지 좌ㆍ우 포도청, 의금부, 전옥서가 종로 근처에 있었다. 포도청과 전옥서에서 순교한 성인들의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2013년 서울대교구장 대주교로부터 ‘포도청 순례지 성당’으로 승인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마지막으로 신앙을 증거하고 밤을 보낸 곳도 이곳이라고 한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성당 한 쪽에는 계구를 한 김대건 신부의 부조 조각상이 있다. 저절로 숙연해졌다.


3분 후 종묘 투어가 시작된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표를 끊었다. 종로 앞을 수없이 지나쳤지만 종묘를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열대여섯 명의 관람객이 해설사를 따라 조선 왕실의 사당, 종묘로 들어갔다. 정문을 통과해서 망묘루와 향대청, 재궁을 지났다. 해설사의 종묘의 역사와 모셔진 신위, 제사절차의 엄격한 격식으로 이어졌다. 불과 몇 백 년 전의 일인데 아득한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우리 일행은 옛날 제관이 이용했다는 동문을 통해 정전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정전은 조선왕실의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종묘의 중심 건물이다. 모실 신주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몇 번의 증축이 있었다고 한다. 아직 녹지 않은 눈이 군데군데 남아있는 넓은 뜰과 100m가 넘는 긴 월대, 그 위에 세워진 낮은 건물. 단순하지만 기품있다. 저절로 신성한 느낌이 들었다. 정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정전 전체가 보이는 곳과 붉은 열주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영녕전까지 둘러보고 악공청 앞을 지나며 위를 올려다보니 겨울 나뭇가지 사이로 낮달이 보인다. 종묘 안에서 바라본 세상은 산자의 그것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듯하다. 빼곡이 둘러싼 나무들과 간간히 들려오는 새소리 그리고 하늘에 떠있는 낮달. 


서울시에서는 조선시대 순라길을 역사탐방길로 복원했다. 우포도청(동아일보) - 순청(AIA타워 앞) - 이문(우정아트센터 앞) - 의금부(종각역1번출구앞) - 좌포도청(단성사앞) - 사복시(종로구청 어린이집앞) - 한성부(세종대왕동상부근)에서 끝나는 길이다.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에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되었다.

 

강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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