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 열사와 최석순 열사

작성일 : 2016-03-21 15:44 수정일 : 2016-09-27 18:54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1. 박건 열사 (1880. 9.20 ~ 1943. 6.11)

 

박건 열사는 경상북도 영덕 출신으로 본명은 의연(義然) 호는 해사(海簑)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신돌석의 의병대에 참가하여 의병활동을 한다. 1909년 신민회 영덕 대표가 되어 활동하던 도중 1911년에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서간도의 통화현으로 망명한다. 그는 이곳에서 이동하, 윤세복과 함께 동창학교를 경영하는 한편 1913년 10월 에는 통화현에서 독립운동단체인 부민단을 조직하고 발전시키며 독립운동에 참여한다.

1914년에는 하서구에서 남흥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에 취임하고, 한족회를 조직하여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1916년 3월에 일본경찰의 앞장이었던 유길선을 사살했다. 1919년 통의부의 통화총관으로 활약하다가 1920년 5월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사형이 확정되었지만 형장으로 압송 도중에 일본군 통역이었던 김자선과 동생들의 도움으로 탈주에 성공한다. 만주에 돌아온 그는 길림성 황기둔에서 후진양성에 전념했다.

또한 1933년에는 남자현, 이규동 등과 함께 하얼빈에서 일본대사 무등신의(武藤信義)를 격살하기로 계획했지만, 남자현이 체포되고 거사는 성공하지 못했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으로 추서됐다.

 

 

2. 최석준 열사 (1891.10.11 ~ 1922.11.14)

 

최석준은 평북 삭주 출신으로 참의부 의장을 지낸 최석순의 동생이며 기독교인이다. 1919년 2월 고종황제의 국장일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했다가 3·1독립운동에 대한 밀명을 받고 귀향하여, 4월에 삭주, 창성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이 일로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게 되자 만주로 피신해서 한족회의 취지를 설명하고 회원들을 가입시키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일제 앞잡이를 처단하고 일본 군경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무장항일 활동을 했다. 1922년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전달하고 돌아오다가 안동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최석준 열사는 의주 경찰서에서 계속 저항하면서 일본경찰에 무력투쟁을 선언하는 등 극렬한 투쟁을 가하다가 동료 이호영과 함께 압록강변 청마령에 끌려가 총살당했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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