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광복군이자 독립운동가의 아내였던 오광심 선생

작성일 : 2015-10-21 23:17 수정일 : 2015-10-22 15:24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여성 광복군이자 독립운동가의 아내였던 오광심 선생

 

오광심(吳光心 1910~1976) 선생은 1910년 3월 15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신부면(新府面) 용건동(龍建洞)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 선생은 부모를 따라 남만주로 이주하여 화흥학교에 입학하여 민족의 얼과 정신을 배웠다. 화흥학교는 1927년 민족주의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 (正義府)에 의해 설립된 학교로 학생들에게 철저한 민족주의교육을 하고 있었다. 선생은 이 학교에서 남다른 민족의식을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스무살이 되던 해에 학교를 졸업하고 정규 교사가 되었다. 이후 항일근거지인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에 있는 동명중학(東明中學) 부설 여자국민학교로 옮겨 학생들의 민족교육에 전념하였다. 교사생활과 동시에 조선혁명당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31년 만주사변으로 중국 내 정세가 흉흉하게 돌아가자 오광심 선생은 교사직에서 내려와 독립운동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었다. 조선혁명군에 가입하여 한중연합 항일전에 참여하였는데, 주로 지하연락 활동을 했다. 이 활동을 펼치던 중 조선혁명군 김학규 참모장을 만나 독립운동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오광심 선생은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험난한 과정에서 ‘님 찾아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노랫말을 지어 비장한 심경을 토로하였다.

 

님 찾아가는 길

 

비바람 세차고 눈보라 쌓여도

님 향한 굳은 마음은 변할 길 없어라

님 향한 굳은 마음은 변할 길 없어라

 

어두운 밤길에 준령을 넘으며

님 찾아 가는 이 길은 멀기만 하여라

님 찾아 가는 이 길은 멀기만 하여라

 

험난한 세파에 괴로움 많아도

님 맞을 그날 위하여 끝까지 가리라

님 맞을 그날 위하여 끝까지 가리라

 

노랫말 속의 ‘님’은 임시정부이자 나아가 조국광복을 의미하였다. 어떤 고난도 극복하고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끝까지 투쟁한다는 선생의 굳건한 결의가 엿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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