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을 일깨우는 강연상(姜鍊翔) 열사

작성일 : 2016-03-21 16:42 수정일 : 2016-09-27 18:49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강연상은 8세부터 13세까지 서당에서 한문공부를 하였다. 18세부터 야학에 다니면서 공부하고, 홍원사립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공부하였다. 21세 때는 홍원의 차상리에 큰 서당을 차리고 70여 명의 학생들에게 한문을 강의하였다. 또한 강연상은 천도교 신도로 열심히 활동했다. 천도교는 당시 민중들에게 항일정신과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종교였다. 그는 천도교 지방 전교사, 교구 임원 등을 역임하는 동안 각지를 돌며 강연을 했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농민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워주고자 했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전개되자 그는 3월 16일 홍원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같은 해 여름에는 동지 박주섭과 서울 서대문 감옥에 미결수로 있던 홍원군 인사들을 후원하기 위하여 서울에서 활동하였다. 미결수로 있던 동지들이 판결을 받은 후 같은 해 8월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강연상은 여태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보다 조직된 독립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1919년 9월 10일 중국 봉천성(奉天省) 장백현(長白縣)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홍원 시위운동을 주도한 윤덕보(尹德甫)를 만나서 그와 함께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을 조직하여, 중앙집행부 재무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강연상이 활동했던 대한독립군비단은 1919년 3월 만주지역에서 3·1운동이 전개된 후 같은 해 5월경 함경남도 혜산진(惠山鎭) 대안(對岸) 장백현에서 함경남도 출신의 이희삼(李熙三)·이동백(李東白)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다. 1919년 11월 1일경 이 단체는 단장 이태걸(李泰杰), 부단장 김동준(金東俊), 총무장 김 찬(金燦), 재무장 이동백, 경무부장 이광랍(李光拉), 참모장 서병호(徐丙鎬) 등의 중심으로 활동되었다.

 

1921년 10월, 흥업단(興業團)을 비롯한 독립운동단체들이 연합하여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을 만들었다. 이 때 강연상은 대한국민단에서 동서남북 4부 중 남부부장으로 일하였다. 당시 함께 일한 인물로는 회장 김 호(金虎), 부회장 이은향, 총무 윤덕보, 비서 김용대(金容大), 의사부장 윤세복(尹世復), 서무부장 석 계(石桂), 군사부장 김찬 등이 있었다. 1922년 8월경 장백현에서 군비단·흥업단·태극단(太極團) 등이 연합한 대한광정단(大韓匡正團)에서는 부단장으로 임명되어 활약했다. 단장은 김 호, 총부장 윤덕보, 군무장 강진건(姜鎭乾), 재무장 김관용(金寬用), 비서장 장승언(張承彦) 등이 주요 간부였다.

 

이후 광정단이 1924년 11월에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비롯한 남만주지역의 독립운동대표들과 길림(吉林)에서 각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결정하고 정의부(正義府)를 조직할 때 정의부에서 강연상을 선전부장에 임명하였으나, 그는 취임하지 않고 군비단에서 함께 활동하던 윤덕보·김용대 등과 함께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러시아로 들어간 그는 러시아 농촌 꼴호즈에서 일하였으며, 1931년 이후 꼴호즈 검사 위원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그는 귀국하지 못하고 5년 후인 1949년 6월 운명했다. 그의 묘소는 카자흐스탄 침켄트주(州)에 마련되었다. 서간도 지역의 독립군 활동을 기록한 《강우건·강상진의 수기》가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누구나 그렇듯 강연상도 태어나면서부터 독립운동가는 아니었다. 그는 농민이었고, 한학자였다. 하지만 민족이 그의 도움을 원할 때 그는 자신이 있던 자리에 머무르려 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누구보다 열심히 서 있는 자리를 옮겨가며 움직였다. 농민이자 서당 선생에서 출발해 군인으로 변모한 그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이다. 우리는 이러한 그의 변화가 그의 민족을 향한 사랑과 희생에서 나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민족과 나라가 국민의 도움을 원할 때,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희생을 기억하여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기꺼이 변신시킬 수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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