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 조성환 열사의 업적을 찾아서

작성일 : 2016-03-21 16:30 수정일 : 2016-09-27 18:50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1) 생애

조성환은 1875년 7월 9일 서울 안남동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동생 조정환이 있었으며 전통적인 양반 가문에서 유교적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성장기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26세가 되던 1900년 9월 무관학도 2기로 선발되어 11월 귀족적인 성격을 띤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졸업을 앞둔 1902년무관학교 전교생을 주도하여 퇴교를 결의하고 학교를 이탈하는 사건을 일으켜 육군법원에서 역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이는 학교와 군부 당국의 부패와 불합리하고 정상적인 운영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며 일어난 사건이었는데 육군법원은 이를 참작하여 3월 3일에 역 15년 형으로 감형한다. 하지만 1904년 칙령을 통해 다시 복권되게 된다. 그는 이후 독립운동에 관여하는 여러 인물들과 교류하며 본격적으로 민족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당시 활동하던 단체 상동청년회에서 교육을 통한 계몽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신민회활동, 독립운동기지 구축시도, 신해혁명참가, 임시정부활동, 광복군활동 등을 통한 적극적인 방법으로 항일독립운동에 관여하게 된다. 서거하기 3년 전 까지도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광복 이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다가 1948년, 74세로 서거하여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서거 14년 뒤인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2. 업적

1) 신민회 활동

1907년 4월에 창립된 신민회는 국권의 회복을 목표로 교육, 언론 등의 방면에서 구국운동을 한 비밀결사단체인데, 조성환은 초기부터 이 조직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조성환은 신민회 회원으로서 러시아 연해주에 가서 해외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계획하고 러시아지역 의병의 국내작전을 준비하였다. 또한 신민회 활동을 통해 평양 기명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계몽활동 또한 전개하였다.

2) 독립운동가 양성

조성환은 신민회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신민회의 주요인사들과 논의하였다. 그 결과 조성환은 군인이 되려고 하는 청년들을 교육시키는 임무와 독립운동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는 군인이 되려고 하는 청년들은 북경으로 파견하여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북경에서 체류하며 하얼빈 등지를 오가며 청년 인재를 발굴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선발한 학생들은 학생의 능력과 재정에 따라 미국 유학을 주선하거나 중국 각지의 학교에 입학시켰다. 당시에는 학생 개개인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한 개 소에 많아야 세 명 정도의 학생을 입학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교류하던 중국의 교육계인사들을 통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인재들을 지원하고 교육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훗날 이렇게 발굴된 인재들은 독립운동에 참여하거나 독립운동을 지원하여 광복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3) 대동단결 선언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조성환은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중국과 연합하여 일본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를 독립운동의 좋은 기회라고 보았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신규식 등과 함께 신한혁명당을 조직하게 된다. 그러나 1917년 미국의 1차대전 참전으로 독일의 패전이 짙어지고 중국이 연합국 측에 가담함으로써 위 국가들이 일본과 대립할 여지가 없어지자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등 13명과 함께 상해에서 대동단결선언을 한다. 대동단결선언은 7개의 강령으로 제정되어 있는데 이는 일본이 국토를 강제점령하고 있으니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가 민족대회의를 개최하여 임시정부를 수립하자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국민주권설을 정립하여 독립운동이념을 확립하여 독립운동을 확산하였고 훗날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과 삼권분립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4) 독립군 활동

조성환은 독립운동단체 군정부에 가입하여 주요일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독립군의 안정적인 활동을 위하여 외교활동을 통해 군기와 토지를 지원받고 군정부의 존재를 인정받는 내약을 얻어내는 성과를 낸다. 이러한 활동기반 조성과 군사력건설에 크게 기여한 덕에 군정부는 임시정부 산하의 군사기관으로 자리잡게 된다. 조성환은 이후 러시아에서 기관총, 소총, 탄약 등의 무기구입 계약을 체결하여 독립군에게 무기를 보급하였고 이는 청산리전투의 승리에 기여하게 된다.

5) 광복군총사령부 활동

임시정부는 1940년 9월 17일 독립군총사령부를 설립하여 군사정책의 목표였던 군대 편성을 실현하게 된다. 독립군총사령부는 산하에 통수부를 설치하여 광복군 지휘권 확립에 힘을 쏟았다. 통수부는 광복군에 대한 최고통수권을 행사하는 기구였는데 조성환은 군무부장이자 통수부의 막료로 임명되게 된다. 조성환은 독립군의 군사예산관리와 인사관리, 모병업무 등 총괄적인 임무를 맡아서 수행하였으며 독립군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하여 중국당국의 지원과 협조를 위한 외교업무 또한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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