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직속군대 육군주만참의부, 참의장 채찬 (백광운)

작성일 : 2016-03-21 16:19 수정일 : 2016-09-27 18:51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채찬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으로 한말 의병 출신이었다. 그는 이명으로 백광운을 사용하였는데, 따라서 당시 '백장군'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7년 고종이 퇴위당하고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장 이강년을 따라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소백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맞서 수많은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독립군으로 투신하기 위해 남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구한말 국내의 의병이 망국 후 만주 독립군으로 전환한 역사적 사실을 실증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서로군정서'에 가입하고, 의용군을 조직해 국내외로 일본의 행정기관을 파괴, 일본 경찰 및 앞잡이들의 숙청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활약하였다. 1921년 관전현 일대에서 침입하는 일본군을 격퇴했다. 계속적으로 독립전쟁의 장애물을 제거하였다. 1922년 6월 김창환과 함께 강계의 '어뢰주재소'를 습격해 큰 전과를 거두었다. 이 해 8월, 남만주 각지에 분산되었던 각 단체가 통합해 대한통의부로 조직되자 가담해 제1중대장으로 활약하였다. 그 뒤 압록강철교 준공식 때 총독사이토습격 등 수십 차례 국내진격작전을 전개하여, 압록강 국경지대 왜경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얼마 뒤 독립군 내부에 분열이 일어났다. "1924년 9월 통의부 유격대장 문학빈이 부하 백병준, 백세우로 하여금 참모장 채찬을 사살하였다"고 밝혔다. 일제와의 전쟁을 통해 당당히 조국 독립을 실현하고자 했던 채찬의 꿈은 이렇게 허탈하게 좌절되고 말았다. 독립군 옛 동지들의 손에 의해 희생된 채찬의 죽음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의 유해를 찾지 못해 묘소조차 만들지 못했으며,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위패만 모셔져 있다.

 

 

< 백서농장 : 군사훈련을 병행한 병농일치의 군영 농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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