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대한통의부 의용군 신팔균 장군

작성일 : 2016-03-21 16:18 수정일 : 2016-09-27 18:51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신팔균은 1882년도에 태어났다. 조선 최초 개항에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던 신석희의 아들로 명문가 집안에서 자라 천성적으로 무관의 기질이 있었으며, 어려서부터 유학과 고금병서에 능통하였고 성품이 청렴 강직하고 문장 또한 비범하였다.

그는 충북 진천에서 청소년의 민족혼을 일깨워주고 항일애국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해 사립 보명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운동을 전개하고 적극적인 항일독립운동을 준비하였다. 그는 2년간 민족 교육사업을 전개하며, 1909년 80여 명의 애국청년들이 참가하여 조직한 대동청년당이라는 비밀 청년단체를 조직하였다. 이는 혈맹단체로서 철저한 보안을 지키면서 전국 각지에서 애국의 대열에 앞장섰다.

 

나라를 빼앗기고 만주로 망명하여 중광단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였다. 이후 경학사가 발전되어 조직된 서로군정서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1918년경부터 동군단 무관학교인 신흥무관학교 교관에 임명되어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1922년 통의부의 군사위원장이 되어 일본군과 수십 차례 교전함으로써 독립군의 사기를 높이고,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모두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일제하에서 김좌진, 홍범도, 김동삼 등과 함께 만주를 무대로 활동한 항일독립투쟁의 대표적인 무장 투쟁가이다. 또한 지청천, 김경천 등과 함께 독립군 삼천으로 불리던 지휘관이기도 했다. 1924년 7월 2일 무관학교 생도와 독립군 합동군사훈련을 시키던 중, 일본의 사주를 받은 중국 마적단과 경찰에 포위, 습격당해 전사하였다.

 

신팔균 장군은 부유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서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지키고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항일 투쟁을 하였다. 군인으로서 가정의 안위와 개인의 영달을 버리고 독립을 위해 싸우다 적의 총탄에 장렬히 순국한 신팔균 열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은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정신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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