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이름, 조선 혁명군 양세봉 총사령관

작성일 : 2016-03-21 16:15 수정일 : 2016-09-27 18:51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양세봉 장군은 조선 혁명군의 총사령관이다. 그는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1910년 한일 강제 합병 후 일제의 억압과 착취로 더욱 궁핍해진 고향을 떠나 1917년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사했다. 그는 민족과 사상을 초월하여 모든 항일세력과 연합하여 독립투쟁을 수행해야 조국과 광복을 더 빨리 쟁취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1932년에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 후,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워 양세봉 장군이 있는 곳에는 승리만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단했다. 양세봉은 중국군과 연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함과 동시에 전투에서 스러지는 혁명군을 보충하기 위해서 조선 혁명군 군관학교를 설립했다. 그리고 직접 홍경선 전투, 노구대전투 등에 참가 하여 연전연승을 거두게 되는데, 1934년 9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일본경찰 밀정에 의해 일본군에 포위되어 전사하게 된다.

일본군은 단순히 그를 죽이고 끝낸 것이 아니라 묘를 파헤쳐 목을 잘라 통화현 영사관에 걸어 놓는 등 여러 악행을 저질렀다. 양세봉 장군이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보였으면 일본군이 이렇게까지 그를 미워하고 두려워했다. 양세봉 장군은 남과 북의 묘지에 이름을 올린 거의 유일한 사람으로 남겨질 만큼 대단한 인물이었다.

 

 

양세봉은 사회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아 업적이 많이 왜곡되어 있다. 하지만 양세봉은 사회주의자도 아니고, 단지 북한 쪽에서 살던 사람일 뿐이다. 아직도 조선족들이 살고 있는 신빈현에서는 ‘양세봉을 노래하네’라는 노래가 불려질 만큼 양세봉 장군은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조선 혁명군의 총사령으로, 그리고 한중연합군의 총사령으로 독립운동에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1930년대 말까지 만주지역, 우리민족의 무장독립을 있게 해준 큰 업적을 이루신 분이다. 양세봉의 수많은 전투는 중국인에게도 큰 인상을 심어주었고, 지금도 중국에서 크게 칭송받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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