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으로 지킨 항일의병장 연기우

작성일 : 2016-03-21 16:13 수정일 : 2016-09-27 18:52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연기우는 의병장까지 되었던 사람이었지만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가 없고, 단지 그가 의병장이었다는 항일 행적에 대해서만 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나라를 위해 죽은 용감한 의병장을 후세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 마음이 아픈 일일 것이다.

 

연기우 열사는 강화진위대 부교로 활동했다. 강화진위대는 1985년 9월 지방의 질서유지와 변방의 수비를 목적으로 설치, 운영되다가 1907년 일본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서울, 경기, 황해 지역 의진과 연합전선을 구축한 뒤 임진강을 넘나들며 항일 투쟁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병들은 신식 무기로 무장해 공격력을 키웠고, 엄격한 군율로 군자금과 물자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이후 연기우 열사는 1909년 13도 창의대장 이인영의 휘하에 합류하여 서울에 주둔한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전국의 의병들은 힘을 모았고 일본군과 4개월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동대문 밖 30리 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또다시 창의한북대장이 되어 다시 의병을 이끌고 연천, 강화 등지에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2월 일제는 연기우 의병장을 비롯한 경기, 황해지역 의병을 탄압하기 위해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감행하였다. 이에 맞서 끝까지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연기우 열사는 국권상실 후 일본군에게 잡혀 순국하였다.

 

1962년 불굴의 의지로 끝까지 일제에 투항했던 연기우 의병장에게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추서하였다. 예전에 역사박물관에 가면 사람들의 비석이나 동상을 보면서 묵념을 하는 일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1년에 한 번이라고 할지라도 그 분들의 희생정신을 기억하고 싶다. 연기우 의병장 뿐 아니라 나라를 위해 싸우다 어디에선가 이름 없이 죽어갔을 모든 의병들을 위해 묵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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