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포기를 몰랐던 광복군 오동진(吳東振) 총영장

작성일 : 2016-03-21 16:10 수정일 : 2016-09-27 18:52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오동진은 1889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마음이 따뜻한 한편 정의심이 매우 강하여 항상 약자의 편에서 도왔다고 전해진다.

 

오동진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세운 평양 대성학교를 졸업한 뒤 자신도 교육 계몽운동을 펼치겠다는 큰 꿈을 품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숱한 노력 끝에 민족주의 사학학교인 일신학교(日新學校)를 설립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항일정신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일신학교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교당하고 말았다.

 

 

일제가 1919년 3·1 운동에 가담한 오동진에게 체포령을 내려지자 만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비밀결사대인 광제청년단을 만들었으며, 군자금 모금을 위해서 의용대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이듬해인 1920년 6월6일에 광복군 총영이 조직되었는데, 오동진장군이 총영장을 맡았다. 그리고 1925년에 만주지역의 정의부 군사위원장과 사령장을 겸임하면서 항일 독립투쟁을 이어나갔다. 각 지방마다 조직적인 군영을 두고 군사훈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20년 미국 국회조사단이 내한하자 민족적 항일정신을 보여주기 위하여 행동대원 안경신 등을 국내에 잠입시켜 서울에 있는 일본의 통치기관을 파괴하도록 하였다.

 

 

1926년 일본 군사시설과 국내의 경찰관서를 습격·파괴하다가 동포의 배신으로 체포되었다. 오동진 대장군은 일제가 진행하는 재판을 거부한 채 33일 동안 단식투쟁을 하기도 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당시 일본의 재판관은 "지도자로서 가져야할 자질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며, 다른 사람을 감화시키는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평가하며 칭송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장군은 그토록 원하던 조국광복을 1년 앞두고 공주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오동진은 법정에서 “나는 세계평화를 완성하기 위하여 ‘조선독립군’ 사령관이 되었다.”고 당당히 말했다. 두려움과 포기를 몰랐던 독립군 장군 오동진. 위대한 그의 영혼은 지금까지도 우리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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