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전쟁을 이끈 전북을 대표하는 이석용 의병장

작성일 : 2016-03-21 16:06 수정일 : 2016-09-27 18:52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2012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이석용 선생은 의병장으로서 큰 이름을 떨치셨던 분으로 1907년 음력 9월 전라북도 진안에서 의병을 일으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체포되어 순국하시기까지 무려 7년 동안 이석용 선생은 의병전쟁과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석용 선생은 1877년 11월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태어났다. 이석용 선생은 문인집안으로 어릴 적부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라며 비범한 문장능력을 보이는 등 충직한 선비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1905년 강제로 체결된 을사조약에 이어 1907년 8월 강제로 군대해산을 당하는 등 날로 일제에 의한 국권 침탈이 심해지자 국권을 회복하고 백성을 구해 낼 것을 결심하게 되었고, 동지를 규합하고 병장기를 준비하여 1907년 8월 26일 진안에서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의병조직을 결성한 후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공격에 성공하여 큰 환영을 받기도 하였다.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자 1909년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로 했으나 이석용 선생을 체포하기 위한 일제의 수색작전을 이기지 못하고 의병을 해산하고 잠복하게 되었다.

 

1910년 항일투쟁 중 전사한 의병을 추모하기 위해 의령단 설치 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왕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1912년 밀맹단 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테라우치 총독과 매국노를 처단하고 중국망명을 계획하다 1913년 10월에 체포되고 말았다.

 

<이석용의 창의록>

 

1914년 2월5일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이석용 선생은 옥중에서 의병활동 등에 관한 진중일기인 창의록을 남기고 1914년 4월 4일 젊은 나이인 37세에 교수형으로 순국했으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천고의 강상을 짊어짐은 중요하고

삼한의 해와 달은 밝게 비치는데

외로운 신하 만 번 죽어도 마음 변치 않으니

사람으로 머리 숙여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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