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후손, 대를 이어 일본에 맞선 이세영(李世永)

작성일 : 2016-03-21 16:00 수정일 : 2016-09-27 18:52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항일 열사들 중 이세영 독립운동가는 이순신 장군의 12대 손이었고, 이세영뿐만 아니라 11대손인 이민화(1898∼1923), 13대 이종옥(1887~1941), 그의 장남 이응렬(1914∼1993)도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순신 장군의 12대손 이세영은 1869년에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을 지낸 뛰어난 가문이었다. 이세영은 1894년 청일전쟁을 계기로 국난극복을 위한 항일투쟁 전선에 본격적으로 투신하게 됐다.

 

지난 1895년과 1906년 두 차례에 걸쳐서 봉기한 홍주의병은 조선을 침탈하려는 일본에 대항했고 이는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퍼지게 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홍주성은 의병장인 민종식과 이세영, 안병찬 등이 의병을 일으켜, 홍주성에 있던 일본군들을 섬멸하고 3일간 항쟁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절한 곳이다. 의병장 이세영은 1906년 홍산에서 민종식을 도와 참모장으로 홍주성을 점령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반격을 받고 크게 패한 뒤 붙잡혀 황주로 종신 유배되었다가, 1907년에 풀려나게 되었다.

 

1908년 동생 창영과 성명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이 되어 항일활동을 계속하였다. 1913년 3월 독립의군부 함경·평안·황해도의 3도 사령으로 활약하고, 6월 만주로 망명, 대종교에 입교하여 상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모부 차장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5월 다시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 교장이 되었다. 고광이 교장을 맡았던 무관학교에서는 군사훈련 뿐 아니라 영농체험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독립 후 나라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였다. 1919년 2월 여준·김동삼(金東三) 등과 함께 39명 명의의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1922년 2월 한교교육회이사장, 8월에 대한통군부 군사부장, 10월에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이 되어 재만주 독립군의 최고 영도자가 되었다.

 

환인현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일제의 추격을 피해 다시 북경으로 건너갔다. 1930년 북경에서도 또다시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1932년 나라를 위해 열심히 활약하던 중 1938년 2월 중국 사천성에서 병사하였다.

 

1. 청양군 장평면 관현리에 있는 성명학교 자리. 고광의 살았던 집터이기도 하다.

2. 1908년 고광이 세운 성명학교 임원록. 교장 이세영의 이름이 서두에 올라 있다.

3. 1906년 의병활동 사실을 알려주는 고광의 일기 등초(騰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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