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묘지의 주인공 최석순 참의장

작성일 : 2016-03-21 15:55 수정일 : 2016-09-27 18:53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2005년도 2월의 독립운동가로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최석순 선생을 선정·발표했다.

 

1925년 3월 만주의 고마령에서는 일본 경찰과 육군주만참의부 소속 독립군 사이의 전투가 벌어졌다. 고마령전투는 만주 집안현 고마령 산곡에서 평안북도 초산 일본경찰대의 기습을 받고 전개한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참의장 최석순이 적탄에 희생되고, 독립군은 4시간에 걸쳐서 29명이 전사하였다고 한다.

 

최석순 선생은 평안북도 삭주 출신으로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동생과 함께 고향인 삭주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3·1만세운동 직후 만주로 망명해 남만주의 독립군 단체의 단장으로 활약했으며, 1922년 8월 대한통의부에 참여해 의용군 제2중대장을 맡아 평북 초산·벽동 일대로 진입, 일본 군경을 공격하는 등 여러 차례 국내 진공작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1924년 5월 대한통의부 의용군 제1중대장 백광운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를 성립시켰으며, 참의부 최고 지도자인 참의장 겸 제2중대장으로 여러 차례 국내 진공작전을 지휘하는 등 크게 활약했다.

 

특히 1924년 5월 제2중대 휘하 대원인 장창헌 등으로 하여금 평북 위원의 대안인 마시탄에서 압록강을 순시중인 사이토 총독을 기습 공격해 만주의 독립운동계를 크게 고무시켰고, 한만 국경지대의 안정을 대내외에 선전하려던 조선총독부의 계획을 수포로 만들었다.

이로 인해 일제는 남만주지역의 독립군 부대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계획했고, 이 과정에서 고마령참변이 발생했다.

 

 

현재 고마령에 있다는 최석순의 묘는 형태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평지가 되어 무덤 가운데 굵은 나무가 솟아 있다고 한다. 이 묘지가 최석순의 것이라는 마을주민들의 증언뿐이라 묘지의 주인이 아닐 가능성도 많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이름도 없이 돌아가신 무명열사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국가적 차원에서 찾아봐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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