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의 젊은 청춘, 조국을 위해 순국한 박치의(朴治毅) 열사

작성일 : 2016-03-21 15:48 수정일 : 2016-09-27 18:53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박치의 열사는 평안북도 선천 출생으로 12살이던 1919년에 3.1독립운동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는다. 신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0년 8월 24일 만주 관전현 소재의 광복군총영의 결사대원 이학필(李學弼) 등과 만나게 된다. 그들로부터 그 당시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미국의원단에게 독립진정서를 제출하고, 동시에 선천역과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독립만세를 불러 세계에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희망을 알리자는 계획에 참가하게 된다.

 

하지만 만주로 가서 폭탄을 가져오기로 한 이학필이 국경 경비가 강화되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이들은 계획을 수정해서 1920년 9월 1일 선천군청의 지적창고에 폭탄을 던지기로 하지만 불발되고, 박 열사는 9월 1일 새벽 3시에 선천경찰서로 가서 폭탄을 던져 경찰서 현관을 파괴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적국의 관리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최급경고문 등을 살포하였다.

'우리는 천하의 대의와 국가의 위급을 위하여 죽기를 무릅쓰고 분투하거늘 너희는 원수의 매와 개가 되어 도리어 같은 동포를 해하니 너희가 만일 지금에 그만두지 아니하고 그대로 있으면 사정없는 벽력의 불이 너희 머리 위에 떨어질 터이니 너희는 일찍이 주의하여 한편으로 너희 목숨을 보전하고 한편으로 너희 자손을 위해 속속히 사직하고 나오라'고 하였다. 다른 격문에는 '재산가의 의연을 청함'이란 내용으로 조선인 관리들의 사직과 재산가들의 독립운동자금 원조를 요구했다.

유인물 살포 후 현장에서 피신은 했지만 일본 경찰의 끈질긴 추적으로 동지 20여명과 함께 9월 7일까지 모두 체포되었다.

 

1921년 4월 14일 동아일보에 박치의 열사를 비롯한 선천경찰서 폭파사건 재판내용에서 재판정에서 사형이 언도되자 박 열사는 일어서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하고 크게 소리쳐 방청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1년에 이르는 재판 동안 몇 번이나 상고하지만 기각되고 결국 그는 1921년 9월 30일 평양감옥에서 '나는 다만 조국을 위하여 죽을 따름이다'고 말하며 성경을 외우고 찬송을 부른 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당시 열사의 나이 불과 18살이었고, 그 공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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