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만원(총 3만 자루) 탈취거사비, 한상호(韓相浩) 열사

작성일 : 2016-03-21 15:47 수정일 : 2016-09-27 18:54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한상호 열사는 함경북도 경성 출신으로 일찍이 간도로 건너가 명동중학교를 졸업했다. 이 학교는 규암 김약연 선생이 외세를 몰아내고 자주독립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힘을 기르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1908년 4월 27일 만들었다. 1919년 3월 13일에 일어났던 용정 3.13만세운동을 주도했던 핵심멤버들 중에 이 학교 출신이 많은 것도 보아도 이곳이 북간도의 독립운동가 양성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상호 열사는 그 이후 와룡소학교 교사로서 만주의 한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19년 3·1독립운동 후에는 국민회 소속의 철혈광복단을 조직해 활동했다. 1920년 1월 일명 ‘15만원 탈취사건’이 일어난다. 한상호 열사와 윤준희, 임국정 등 철혈광복단 단원은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알아보다가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용정으로 현금이 이송된다는 것을 알고 화룡현 동양리에서 매복해 있다가 호송차량을 운반 중인 일본경찰을 사살하고 현금 15만원을 탈취한다. 이 당시의 15만원의 가치는 총 3만 자루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거금이였다. 그는 탈취한 돈을 가지고 동지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체코슬로바키아제 무기를 다량 구입해서 북로군정서에 제공했다.

 

하지만 1920년 12월 그는 일본 경찰의 앞잡이였던 엄인섭의 밀고로 윤준희, 임국정 등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에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고, 일본헌병대에서 모진 악형을 당하다가 청진으로 압송되었으며, 1921년 4월 4일 고등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1921년 8월 2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윤준희, 임국정과 함께 교수형으로 사형당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3살이었다. 그들의 업적을 기려 용정에는 ‘15만원 탈취거사비’가 세워지고,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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