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를 호령하던 장기천과 안국형 십대 열사

작성일 : 2016-03-21 15:46 수정일 : 2016-09-27 18:54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1. 장기천 열사

 

장기천열사는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열 입골 살 되던 해인 1919년 3.1운동 직후에 만주로 건너가 대한독립단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대한독립단의 목적은 친일단체를 파괴하고, 일본 관공서를 공격해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것이었다.

장기천 열사는 1922년 대한통의부 제5중대 참사로 활동하면서 동지 8명과 의주 고령삭면의 일본주재소를 습격, 일본 경찰 3명을 사살하고, 1926년에는 정의부에 가담하여 의용군으로 무장투쟁을 했다. 1927년 7월에는 의용군 제5중대장 김석하의 명령을 받아 조악경찰출장소를 습격해서 일본경찰을 사살했다. 8월 15일에는 의주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던 중 일제의 앞잡이 계승호와 악질 삼림간수 강영화를 사살하고, 8월 17일에는 수진면 주재소를 습격했다.

관전현 일대에서 의열활동을 계속하다가 1928년에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결국 1929년 9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을 받았지만 10년 7개월 간 옥고를 치르고 해방이 되면서 풀려났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으로 추서됐다.

 

2. 안국형 열사

 

안국형 열사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위해 혼자 만주로 망명해서 활동했다. 정의부 단원이었던 안국형은 제2중대장 이윤환의 명령을 받고 홍학순과 함께 요령성에서 일본 경찰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최상진을 사살했다.

1930년에는 조선혁명군에 참여, 국내에 진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고 같은 해 봄에는 국민부의 간부들이 군자금을 낭비하여 신용을 잃자 이진무와 함께 간부들을 죽이기 위해 흥경현에 가지만 중국관헌의 방해로 실패한다. 1931년 2월 관전현 나한구의 김석영 집에서 노동자위군을 조직하고, 4월에는 재만조선인혁명군으로 발전시킨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4일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함께 평북 구성군에 잠입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33년 6월 2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강도, 살인 등으로 무기징역을 언도받았지만 감형되어 15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95년 건국훈장독립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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