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여성 항일열사 고수선

작성일 : 2016-03-21 15:23 수정일 : 2016-09-27 18:54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고수선은 제주도 근처의 자그마한 섬 가파도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나 부모님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고수선을 구시대가 아닌 개화된, 주체적인 여성으로 키웠다. 후일 여장부로서의 삶을 산 것 역시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녀는 1915~1918년에는 학교 안에서 일본인 교사 배척운동을 전개하다 1919년 학생들을 동원해 3월1일 탑골공원 시위에도 참가하였고, 또 그해 독립군 자금을 모금해 송금하는 등 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하였다. 그 후 체포돼 손가락 사이를 연필로 비트는 등의 잔혹한 고문을 받았으나 ‘조국 광복’의 뜻을 굳히지 않았으며, 모두 이겨내고 석방되었다. 이때 당한 고문으로 그녀는 손가락에 장애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경성의학전문학교의대에 진학하였고, 1928년 졸업하여 최초로 제주 출신 여의사가 되었다. 고수선의 활동은 단순히 항일에 관련한 것만은 아니었다.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한 여성운동을 활발히 하기 위해 정치적인 행보도 하였고, 의사, 제주도민으로서 모두 여성으로서 주체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활동을 1989년 타계할 때까지 쉼 없이 하였다.

 

애국지사 고수선이 열 몇 살 밖에 되지 않는 어린 나이 때부터 3.1운동이나 일본 교사 배척 운동 등에 참여하고 고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은 더더욱 존경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수선 열사의 삶이 진정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그녀가 당시 여성의 몸으로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일들을 용기 있게 개척해나갔다는 부분이다. 그리고 부유한 집안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 돈과 명예가 따르는 의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복만을 쫓은 것이 아니라, 민족과 여성 전체를 위해 삶 전체를 바치려 했다는 점에서 그 삶 자체를 열심히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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