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잔다르크’ 김마리아 선생

작성일 : 2016-03-21 15:20 수정일 : 2016-09-27 18:55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선생은 1892년 6월 18일 황해도 장연에서 출생하여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자랐다. 이름 마리아 또한 세례명이자 이름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부친이 지어주신 것이다. 개화 지식인이자 애국지사였던 부모님, 친척들 사이에서 자란 것이 김마리아 선생을 독립운동가의 길로 인도하였다.

 

1896년에는 부친이 세운 학교에 들어가 신학문을 익혔고,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 상급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상경하여 1906년부터 정신여고의 전신인 정신여학교에 입학하였다. 1910년 정신여학교를 졸업한 뒤 전남 광주 수피아여학교에 교사로 부임하여 교육 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 1913년 모교인 정신여학교 교사로 전임하였고, 이곳에서 선생의 재능과 조국에 대한 열정을 알아본 루이스 교장의 추천과 지원으로 이듬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것이 훗날 동경 2·8독립선언에 동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조국광복을 위해 일신을 바치겠다는 굳은 의지를 세운 뒤 스스로 졸업을 포기하고 귀국하였다. 독립의 때를 놓치지 않도록 여성계에서도 조직적 궐기를 서둘러야 한다며 3·1운동 사전준비운동에 진력하였다. 모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여성항일운동을 북돋우고자 기존의 애국부인회를 바탕으로 하여, 그 해 9월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다시 조직하고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절대 독립을 위한 독립투쟁에 있어 중요한 임무를 맡기 위한 준비와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는 일에 힘을 쏟던 중에 애국부인회 관계자들과 붙잡혔다. 그는 심문을 받으면서 “한국인이 한국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 연호는 모른다” 는 등 확고한 자주독립정신을 보였다. 하지만 끝내 고문 후유증의 재발로 조국 광복에 코앞에 두고 1944년 3월 13일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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