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으로 피어난 향기로운 꽃, 김향화

작성일 : 2016-03-21 15:19 수정일 : 2016-09-27 18:55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김향화 선생은 1896년 7월 1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순이’였으나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김향화’ 라는 이름으로 수원에서 기생생활을 시작했다. 스무 살 이후 수원 최고의 기생이 된 선생은 유학생들, 지식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조선 독립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기생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기생은 지성과 미를 모두 갖춘 예인이라고 여겼던 조선시대와는 달리, 일제시대에는 성을 파는 천박한 직업일 뿐이라고 보았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이 전통적인 기생의 존재를 부정하고 '기생 및 창기 단속령'을 내려 천한 기생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당시 항일 기생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이를 탄압하기 위한 일제의 세뇌이지 않았을까 한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승하하자 김향화 선생의 지휘 아래 20명의 어린 기생들은 비단옷 대신 소복을, 화려한 비녀대신 나무비녀를 꽂은 채 대한문에서 통곡하며 망국의 설움을 토로하였다. 이는 당시 매일신보에 대서특필되었고, 수원지역 기생들의 애국심을 널리 알리는 사건이 되었다. 일제의 강압으로 인해 자혜병원으로 성병검사를 받으러 가던 3월 29일, 김향화 선생과 기생들은 수원 경찰서 앞에 이르자 몰래 치마폭에 감춰두었던 태극기를 꺼내들어 일제히 대한독립을 부르짖었다. 일본군이 총칼을 들이대며 위협해도 계속해서 만세를 외치던 김향화 선생은 결국 만세운동의 주모자로 체포되고 말았다. 이후 감금되어 고문당하던 선생은 결국 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기에 이른다. 그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상황에 따르면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기생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잘 알려지지도, 인정받지도 못했던 여성 독립운동가 김향화 선생.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 힘썼던 김향화 선생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이며 열사가 아닐까?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에 잠들어있는 독립운동가들이 많다. 이번 기회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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