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의 어머니, 녹두꽃 정정화 열사

작성일 : 2016-03-21 15:14 수정일 : 2016-09-27 18:55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프랑스에 잔다르크가 있었다면 대한민국에는 정정화가 있었다. 정정화 열사 앞에는 다양한 수식어들이 붙는다. 한국의 잔다르크, 임시정부의 어머니, 녹두꽃 정정화 등이 그것이다. 정정화는 임시정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정정화 선생님은 1900년 8월 3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시아버지와 남편 김의한 이 상해로 몰래 망명한 소식을 들은 정정화는 시아버지를 돕기 위하여 스물 한 살인 1920년에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1930년까지 10년 동안 독립운동자금 모음 활동을 하여서 수차례 국내에 잠입하여 독립운동자금 모집 임정에 전달하는 것을 6차례나 하였다. 주된 활동은 공식·비공식적인 독립운동 자금 조달 임무였고, 이 와중에서 일본 경찰에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고생을 하였다.

 

정화는 그런 가운데서도 1940년에 독립운동 단체인 한국국민당·한국독립당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43년에는 임시정부의 좌우통합 활동에 부응하여 여성차원의 민족통일전선인 한국애국부인회를 다시 세웠다. 정정화는 한국애국부인회에 참여하였고 나중에는 한국애국부인회의 훈련부 주임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또 정정화는 회고록 [녹두꽃]을 쓰기도 하였다. [녹두꽃]에는 정정화 선생의 삶에 대하여 써져 있었다. 정정화 선생의 회고록 [녹두꽃]에는

 

출처:KBS 한국의 유산(www.kbs.co.kr/1tv/sisa/heritagekorea)

 

독립운동은 총칼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만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자신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쟁취하려는 것이 독립운동이다

 

라는 내용이 있다. 정정화 선생의 독립운동 방법은 달랐었다. 여자의 몸으로는 힘으로 하는 독립운동은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정정화는 자신이 못하는 일이 있다는 것에 절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으려고 하였다. 뒤에서 조용히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하지만 사실 정정화는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열성적으로 독립운동에 임했던 것이다. 이렇게 정정화 선생은 나라를 위하여 열심히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1991년 11월 12일에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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