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단, 제2의 독립선언을 계획한 박정선

작성일 : 2016-03-21 15:11 수정일 : 2016-09-27 18:56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박정선 열사의 출생과 사망, 그리고 독립운동 이전의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박정선 열사의 생애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대동단 활동이다. 그녀의 삶은 1919년에 대동단에 가입해서 활동한 이후의 행적만 어느 정도 남아있다. 귀족, 관료에서부터 학생, 승려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 수만 명을 포섭해서 대동단을 조직하고, 인쇄기를 구입해서 <대동신문>을 비밀리에 발간했다. 대동단 활동의 대부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의 시초와도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활동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계층이나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국민이 함께 참여하여 만들어나갔던 단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 대동단의 활동을 통해서 독립에 대한 열망이 단순히 독립운동가 한 두 명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함께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박정선 열사이다.

 

대동단은 계속해서 제2차 독립선언계획을 세우고 일제 식민지배의 부당함과 3.1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의 무자비한 행동을 고발하며 조선의 독립을 외쳤다. 박정선 열사는 1919년 11월 28일 안국동에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경찰에 잡혀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다.

 

1919년 10월 31일에 대동단에서 2차선언서에 서명하고 그날 오후 6시에 안국동에서 태극기를 두르며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던 서너 명의 여성이 굵은 포승줄에 손목을 묶인 채 경찰서로 연행됐고, 단원 40명 모두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그들 중 유일하게 박정선 열사만 5월 21일 만기 출소를 하게 된다. 이 당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증언에 의하면 얼굴은 핼쑥하고 앞니가 빠져 있다고 전하고 있다. 쉽지 않았을 형무소 생활과 일제의 압박이 얼마나 그녀를 힘들게 했을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출옥 당시 열사의 나이 47살로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희생하여 나라를 구하겠다는 독립의지에 불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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