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 태어나 독립운동가로 남은 남자현 열사

작성일 : 2016-03-21 15:10 작성자 : 이제희 (mjjm120@naver.com )

 

남자현 열사는 자신의 삶을 엄마와 며느리로서 남겨두는 것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훨씬 더 큰 고난과 어려움이 있는 항일 운동가로서 삶을 살았다. 결국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3월 9일에 46살의 나이로 아들 김성삼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서로군정서에 가입하여 군사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남자현 열사는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고도 시어머니를 모시며 열부상까지 받았던 한국 어머니의 굳건한 의지가 느껴지는 인물이다. 1925년에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암살하려고 서울로 들어오지만 경비가 삼엄해 실패한다. 1932년 9월에는 국제연맹조사단 릿톤경이 하얼빈에 조사를 하러 왔는데 흰 수건에 ‘한국독립원이라는 혈서를 쓰고 왼손 무명지 2개를 잘라 싸서 보내는 등 남성으로서도 힘든 일들을 계속해 나갔다.

 

1933년 1월에는 부하 정춘봉과 상의해 만주지역 실세인 무등신의를 사살하기로 한다. 2월 27일에는 이춘기와 함께 만주국 건국일인 3월 1일 행사에 참석할 예정인 무등신의를 제거하기 위해 거지로 변장한 채 권총 1정과 탄환 등을 몸에 숨기고 장춘으로 가던 중 미행하던 일본 형사에게 붙잡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 때 열사의 나이 61세. 그녀는 자신이 죽어도 여한이 없는 나이이니 두려움이 없다고 말하며 이 일을 자신이 맡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녀는 하얼빈 주재 일본영사관에 있는 감옥으로 끌려가 잔혹한 고문을 당한다. 옥중에 있던 그해 8월에는 일본이 주는 식사는 필요 없다며 15일간 단식을 하고, 8개월의 모진 고문을 당한 후 8월 17일에 병보석으로 풀려난다.

 

하지만 이미 심신이 쇄약해질 대로 쇄약해진 열사는 죽음을 감지하고 자신을 만나러 온 아들 김성삼과 손자 김시련 앞에 중국돈 248원을 내놓으며 200원은 조선이 독립하면 독립축하금으로 바치고, 48원은 손자 학자금과 친정의 종손을 공부시키는 데 쓰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감옥에서 풀려난 지 5일 만인 8월 22일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진다” 라는 유언을 남기며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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