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ne Japan was in awe of, General “Hong Beomdo, who flies through the sky”

작성일 : 2015-10-10 21:33 수정일 : 2016-09-26 14:11 작성자 : 이제희 (mjjm120@naver.com )

 

Yeochun, Hong Beombo, was a legendary general who never lost a battle that took after the Battle of Huchiryeong. He led the Battle of Fengwudong to victory, which resulted in the Japanese military to fear him and also awe him and referring him as a ‘Hong Beomdo, who files through the sky’. At that time, Joseon people respected him and regarded him as a god. Also, along with General Shin, it is notable that he was almost the only commoner general.

 

He was born in North Pyongan-do, on August 27th, 1868. The first time when he got involved in righteous army was 1895 and he usually did his movement Sinkaps an and Musan, NorthPyongan-do. When the "Jungmi Incident" happened in1907 and righteous armies rose dramatically all over the country, he got inspired and formed a righteous army in Kapsan. In that year, on November, he had guerilla warfare against Japanese armies in Samsu and Kapsan. The battle took about 6hours and he finally defeated them. He, with his crew, fought Japanese armies bravely and won everytime. Japan put every effort that they could to catch him, however, they could not because he was elusive.

The documents that Japan wrote in that time write that, “Hong Beomdo has a heroic character that his followers respect him as a god. This is because his personality is humble, sincere, and upright. He also did not desire for authority and never stepped back for a noble cause.” Even in the perspective of enemy, Hong Beomdo was a great general.

 

In 1962, Korean government awarded him a Presidential Prize, applauding his achievements. However, that was it. Even though he was the hero of our ethnic group, had to be forgotten because of the reason that he was a socialist and that he was a farmhand (Meoseum). Still, Koreans from Kazakhstan and his descendants remembered him and honored him.

 

In 1982, reporters from <Leninkichi>, a Korean newspaper in Kazakhstan, and other Koreans living in Kazakhstan moved his tomb to Kyzylorda Central Cemetery and erected his torso and three memorials of him to praise the general. They also succeeded in designating his house as a historical heritage and the neighboring streets as ‘Hong Beomdo Avenue’.

 

 

 

일본군조차 외경했던 맹장 “하늘을 나는 홍범도”
 

 

여천 홍범도 장군은 1907년 11월 일본군 30여명을 사살한 후치령 전투를 시작으로 1년 동안 무려 60여번의 전투를 치르면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던 전설적인 장군이다.

봉오동전투를 큰 승리로 이끌어 일본군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고 일본군들은 그를 ‘하늘을 나는 홍범도’라고 부르면서 외경했다. 당시 조선인들은 그분을 신처럼 떠받들며 존경했었다. 게다가 신돌석 장군과 더불어 거의 유일한 평민출신 장군이라는 점은 더욱 특이할 만하다.

홍범도는 1868년 8월 27일 평안북도에서 태어났다. 홍범도가 의병활동에 처음 뛰어든 것은 1895년, 당시 함경북도 갑산과 무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1907년 정미사변이 일어나고 전국에서 의병이 폭발적으로 일어나 그는 크게 자극을 받았고 갑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해 11월 홍범도는 삼수와 갑산 지방에서 일본군과 유격전을 벌였다. 장장 9시간에 걸친 전투 끝에 일본군을 전멸시켰다. 홍범도는 삼수와 갑산에서 의병들을 이끌고 용맹하게 싸웠으며, 매번 승리했다. 일본군은 홍범도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지만 신출귀몰한 그를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당시 일본군 정보기관이 남긴 기록을 보면 ‘홍범도의 성격은 호걸의 기풍이 있어서, 배하의 자들로부터 하느님처럼 숭배를 받았다. 그 이유는 사람 됨됨이가 소박하고 성실하며 청렴하고 명예를 탐하지 않았고, 대의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몸을 굽히는 것을 꺼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적군인 일본군의 눈에도 홍범도는 위대한 용장이었던 것이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홍범도 장군의 공훈을 기리며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그뿐이었다. 김좌진 장군과 자웅을 겨루던 민족의 영웅이지만 천한 머슴출신,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잊혀져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의 한인들과 그의 후손들은 그를 기억하고 존경했다. 1982년 카자흐스탄 한글신문 《레닌기치》기자들과 한인들은 그의 묘소를 크질오르다 중앙공동묘역으로 이장했고, 그의 흉상과 3개의 기념비를 세워 장군을 기렸다. 그가 말년에 머물렀던 집을 역사기념물로 지정하고 그 근처의 거리를 '홍범도 거리'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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