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gotten Hero, Pyeon Kangryeol, the leader of Yiseongdan

작성일 : 2015-09-23 22:30 수정일 : 2016-09-26 14:12 작성자 : 이제희 (mjjm120@naver.com)

 

Aesa Pyeon Kangryoul. He was born as the third child among four siblings in Yeonbaek-gun, Hwanghae-do, on February 28th, 1892. He had robust and strong build so he was prominent since when he was young.

In 1908, righteous armies who were scattered in all over the country, gathered in Yangju, formed ‘13do Chanyidaejinso’, and joined 'New People’s Association' and did independence movements in Hwanghae-do. During this time, he got involved in the 105-Man Incident and arrested. 105-Man Incident was an incident that Japanese governor-general of Joseon, Terauchi Masatake, fabricated a simple fund-raising led by Ahn Myunggeun into an attempted assassination incident. Because of the incident, Aesa got imprisoned in Seodaemun Prison for three years and got terrible tortures during the time in the prison.

 

He continued his independence movements passionately even after the release. He formed a suicide squad to explode the Japanese government office building and did intense anti-Japanese movements. However, he got arrested again so served another one year in prison. During the imprisonment, he suffers from an illness so he was released in 1921. He then flew to China and organized a rebel community, Yiseongdan. It was one of the representative rebel communities which had 250 members, and ventured to attack Japan.

 

<의성단과 편강렬 선생의 보도기사.《시대일보》1924년 5월 19일자)>

 

In 1924, he got arrested again but because he fell into a critical condition, Japan released him for a sick bail. However, on January 16th,1929, he who was brave as a tiger and strong as steel died because of the illness. “Do not move my grave to Joseon before the independence,” was his last will.

Unfortunately, the location of his tomb is unknown. Even though a tombstone that has ‘a tomb of Aesa Pyeon Kangryeol’ written on it was erected; either his tomb or the tombstone is nowhere to be found. Pyeon Kangryeol, who was the leader of Yiseongdan and a courageous, tenacious independence activist, is a hero that we have to commemorate and express gratitude for always.

 

《독립신문》1924년 5월 31일자), (105인 사건으로 일경에 끌려가는 독립투사들)

 

 

잊혀진 위대한 영웅, 의성단 편강렬 단장
 

 

애사 편강렬. 그는 1892년 2월 28일 황해도 연백군에서 4남매 중 셋째로 출생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한 체구에 힘이 장사여서 눈에 띄는 아이였다고 한다. 을사조약 체결 후 전국 곳곳에서는 의병이 일어났다. 1907년 편강렬은 이강년의 의병진에 입대했다. 편강렬은 16세 어린 나이에 선봉에 서게 되었다.

 

1908년 전국에 흩어져있던 의병들이 양주에 집결하여 13도 창의대진소를 결성하고,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에 가입해 황해도지회에서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105인 사건은 단순한 모금활동을 하다 체포된 안명근을 일제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암살미수사건으로 조작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어 3년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하며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그는 일본관청을 폭파하는 결사대를 조직해 격렬한 항일운동을 하다 체포되어 1년간의 혹독한 감옥살이 끝에 병을 얻어 1921년 출옥했다. 중국으로 망명한 편강렬은 북경과 상해 일대에서 항일 무장 단체인 의성단을 만들었다. 250여명으로 이루어진 의성단은 대표적인 항일무장투쟁단체로 일제에 대한 무장공격을 감행했다.

1924년 다시 체포되어 지독한 고문과 감옥살이로 상태가 위독해지자 일제는 병보석으로 그를 석방했다. 하지만 1929년 1월 16일 호랑이 같이 용맹하고 강철처럼 강인했던 독립투사는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병사하고 말았다. “독립을 이루기 전에는 내 시신을 조국으로 이장하지 말라”는 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그의 묘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무덤에 ‘애사 편강렬지묘’라는 비석이 세워졌다고 하지만 현재 무덤도, 비석도 찾을 수 없다. 용맹하고 강인했던 독립투사, 의성단 단장 편강렬. 오래오래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이름없는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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