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Jeanne d‘Arc , Kyeung Shin Ahn, delicate & pregnant who threw a bomb

작성일 : 2015-05-16 23:21 수정일 : 2016-09-26 14:16 작성자 : 이제희 (mjjm120@naver.com )

 

Kyeung Shin Ahn was born in 1887, July 22nd in the state of Pyoungan, Daedong gun. She was a faithful christian, who studied in Pyeongyang girl's high school for 2 years and returned to her home when the 3.1 demonstration happened. She participated with all of the process with immense enthusiasm. She was arrested by the Japanese police because she participated in a demonstration. She only became released after a month of severe torturing.

 

After this, she participated in the Patriotic Women's Committee by the recommendation of Jung Suk Ahn, a close fellow Christian. Kyeung Shin Ahn became and worked as a transporter in the Pyeongyang District in the Korean Patriotic Women's committee. She strived to collect money for acts of liberation and transported it over to the temporal government of Korea in Shanghai. Because Korean Patriotic Women's Committee was incapable of running in Korea, she participated in the Korean Liberation Squad.

 

Kyeong Shin Ahn said " I dwelled about how to get the Japanese intruders surprised and drive them out to their island. I believe that violent revenge like throwing bombs, suicide, and assassination would come into very effective use." She thought that peaceful demonstrations or diplomatic petition would never bring national independence. She thought that force and violence was the only way to get the Japanese on their knees. With these kind of beliefs, she dived into the most bravado and violent movement, even with a delicate women's body. She signed up for the Korean Liberation Team and threw a bomb.

 

Afterwards, she was dragged off by the Japanese with a 10 day old infant in her arms. Even in court, she was so determined with a confidence. She exclaimed "What wrong exists with Choseon people doing liberation demonstrations to live a life well?"

 

Nothing is known about her life after her 10 years of imprisonment. The medal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was posthumously awarded in 1962 for her achievements.

 

 

임산부의 몸으로 적진에 폭탄을 던진 여전사, 안경신
 

 

안경신은 1887년 7월22일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평양여자고등학교에서 2년간 공부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있을 때 3.1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안경신은 이 모든 과정에 동참해 열렬히 활동했다. 만세운동에 참가했단 이유로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그녀는 한 달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한 후 겨우 풀려났다.

 

그러던 중 안경신은 같은 기독교 신자로 친분이 두텁던 안정석의 권유를 받아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했다. 안경신은 대한애국부인회 평양본부의 교통부원이 되어 활동했다. 그곳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을 모아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로 보내는 활동에 매진했다. 대한애국부인회가 국내에서 더 이상 활동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그곳에서 안경신은 대한광복군 총영의 활동에 동참했다.

 

안경신은 “나는 일제침략자를 놀라게 해서 그들을 섬나라로 철수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곧 무력적인 응징 - 투탄(投彈), 자살(刺殺), 사살(射殺) - 같은 일회적 효과가 크게 주요할 것으로 믿고 있다.”라고 말했다. 평화적인 시위나 외교적인 청원으로는 조국의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력으로 일본제국을 무찌르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신념 속에서 안경신은 여자의 몸이지만 누구보다 용맹하고 과격한 의거에 투신하게 되었다. 광복군총영 결사대에 자원해 폭탄을 투척한 것이다. 안경신은 태어난 지 열흘이 갓 지난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채 끌려갔다. 법정에서도 안경신은 당당하기 그지 없었다. 안경신은 “조선사람이 독립운동을 하여 잘 살겠다고 하는 것이 무슨 죄냐?” 라고 호통쳤다. 10년간의 감옥살이 이후 안경신 의사의 행적이 어떠한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1962년 안경신 투사의 업적을 기려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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