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독립에 두 눈을 바친 김락

작성일 : 2016-03-18 16:43 수정일 : 2016-09-27 18:56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김락은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가족들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만세시위에 당연하게 참가했다. 김락 열사는 58살이던 1919년 안동군 예안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는데,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1차는 3월 17일 오후 3시 30분에 선발대격인 30여명의 시민이 면사무소 뒤 선성산에 일본이 세운 '어대전기념비'를 쓰러뜨리는 것을 시작으로, 시장주변에 있던 3개의 시위대 100여 명이 일제히 시장을 향해 진격해 갔다. 시위대는 수비대까지 동원한 일본 경찰의 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이동봉의 인솔 하에 예안주재소로 몰려갔다. 하지만 주동자를 비롯한 15명이 체포되었고, 이로 인해 시위를 하던 군중들도 해산했다. 그런데 주동자들의 체포에 격분한 시민들이 오후 6시경에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다시 주재소로 몰려갔다. 경찰의 해산 명령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1,500여 명으로 늘어나고, 이들은 구금자들을 탈환하기 위해 돌멩이와 기왓장을 던지면서 주재소로 밀고 들어갔는데 이 과정에서 다시 25명이 체포됐다.

 

2차 시위는 3월 22일에 일어났는데 오후 7시부터 약 2천명의 시위 군중들이 태극기를 들고 동부동과 서부동, 선성산 위에서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발포로 13명이 부상을 입고 3명이 체포됐다. 김락 열사도 이 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었는데 신문과정에서 받은 고문으로 두 눈을 실명하여 11년간 고생하다가 고통 속에 여생을 마쳤다. 그 와중에 아들 이동흠과 이종흠도 제2차 유림단 의거로 체포됐다가 김락 열사 서거 2년 전에 풀려난다.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김락 열사도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여인이었을 것이다. 만세운동 하나가 그녀의 인생 자체를 얼마나 크게 바꾸어놓았는지를 보고 있으면 놀랍고 안타깝다. 하지만 열사의 행동에서 알 수 있듯이 나라를 지키는 힘은 평범한 국민에게서 나온다. 김락 열사와 같이 조국을 위해 몸 바치는 의지와 열망을 갖게 되기를 나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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