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무명열사 : 나월환

작성일 : 2015-10-15 19:40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송죽(松竹) 나월환(羅月煥)의 본관은 나주이고, 전남 나주 출신이다. 1924년 3월 인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세이조(成城)중학교를 마치고, 아오야마(靑山)학원에 입학하였다. 박열·송영운·최학주·유치진 등 유학생들과 사귀면서, 아나키즘에 심취하였다.

 

이후 상하이로 건너 가, 1930년 중국인 황샤오메이의 소개로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에 입학하여, 1933년 제8기로 졸업하였다. 졸업 후에는 난징에 있는 중국헌병학교 및 중국군관학교 교수를 거쳐 중국군 헌병장교로 근무하였다. 이 무렵 한국혁명당․철혈단 활동에 참여하였고,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입하여 아나키스트운동에 참가했다.

 

나월환 선생의 항일 활동 중 가장 큰 내용을 차지하는 것은 한국청년전지공작대, 일명 전지공작대이다. 전지공작대는 1939년 11월 11일 충칭에서 당시 죽국군에서 활동하던 한국 아나키스트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되었다. 결성 과정에서 김구의 지원도 받았지만, 임정과는 상관이 없는 독자성을 견지하였다. 결성 당시 대장은 나월환이었다. 전지공작대의 주요 활동은 항일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는 중국군과 함께 전투를 하며 일제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고 군인으로서의 역량을 갖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아나키즘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 전지공작대는 다른 독립운동 단체와의 연결을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활동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조국 광복을 위한 충실한 헌신을 위해 대장 나월환은 1941년 한국광복군에 편입되게 된다. 이에 광복군에 정예부대인 제5지대를 결성하고 광복군의 군사적 역량 보강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때 지대장인 나월환은 암살되고 만다. 1942년 나월환 암살은 일제가 아니라 그와 같은 부대원이 저지른 것이라는 아픈 사실이 숨어있다. 계속해서 나월환의 정예부대를 임정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임정 측 사람들과, 부대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혼자서만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나월환 선생의 사이를 의심하는 부대원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아나키즘은 같은 뜻을 가진 청년들을 모이게 한 힘도 되었고, 그들의 동지이자 지도자를 제거하도록 하는 독이 되기도 했다.

 

나월환 선생에 대한 글을 쓰면서 아나키즘이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무정부주의’라고 나오는 이 말은 사실 현재의 내가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에 쉬운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형태의 지배와 피지배에 대한 거부’라는 표현이 선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한 헌신에 뛰어들게 했다는 것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의 이념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는지 나월환 선생의 생애를 통해 비로소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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