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무명열사 : 이준식

작성일 : 2015-09-21 19:29 수정일 : 2015-09-22 10:46 작성자 : 이제희 ( mjjm1203@naver.com)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한국광복군 제1지대장 출신 이준식(李俊植, 1900. 2. 18. ~ 1966. 4. 5.) 선생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으로 건너가 1921년 중국 곤명에 위치한 운남강무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만주로 이동하여 항일무력을 재정비하기 위해 조직된 대한통의부에 가입했다.

만주지역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던 선생은 1924년 정의부 중앙위원에 선임되었다가 1927년 오동진이 일제에 체포되자 그의 후임으로 정의부 군사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28년에는 만주지역 3부가 통합해 조직된 국민부의 군사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29년 12월 국민부를 지원하기 위한 민족유일당으로 조선혁명당이 조직되자, 조선혁명당 중앙위원 및 산하 무력단체인 조선혁명군 참모장으로도 활약하였다.

선생은 1931년 노선대립 등으로 만주지역에서의 독립군 활동이 어려워지자 상해로 이동하여 중국군 고급장교로 활약하면서 한국군인회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지속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여 임시정부가 장사, 광주 등지로 이전하게 되자 임시정부 청사를 확보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39년에는 임시정부 군사위원회 화북 지구 특파단으로 서안에 파견되어 병사모집과 군사훈련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선생은 총사령부 참모에, 같은 해 11월에는 한국광복군 제1지대장에 임명되었다. 1941년에는 광복군 제1징모분처 주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2년 선생은 임시의정원 비서장 및 중령구 의원 선거회장을 맡다가 1943년 광복군 총사령부 고급 참모로 전입되었고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에도 선출되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준식 선생에 대해 일반인에게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선생의 활동이 만주를 중심으로 펼쳐졌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단체들과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준식 선생의 활동은 우리나라의 무력 항일투쟁을 증명해주는 것과도 같다.

독립의 희망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끝까지 항일을 위한 총칼을 놓지 않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인물, 그가 바로 이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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