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항일운동가, 정정화

작성일 : 2015-07-30 19:51 수정일 : 2015-09-10 13:57 작성자 : 이승언(영일초6) (se0818.lee@gmail.com )

조용한 항일운동가, 정정화

 

항일운동 하면 우리는 흔히 아는 3.1운동이나 안중근, 윤봉길 열사의 무력항쟁을 떠올린다. 이것처럼 우리는 주로 직접 나서서 싸우는 것만을 항일운동,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항일운동에는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항일운동가 정정화 선생님은 뒤에서 조용히 독립운동을 하셨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정정화 선생님의 항일운동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많은 이들에게 정정화 선생님의 조용한 항일운동을 알리기 위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정정화 선생님은 1900년 8월 3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시아버지와 남편 김의한 이 상해로 몰래 망명한 소식을 들은 정정화는 시아버지를 돕기 위하여 스물 한 살인 1920년에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1930년까지 10년 동안 독립운동자금 모음 활동을 하여서 수차례 국내에 잠입하여 독립운동자금 모집 임정에 전달하는 것을 6차례나 하였다. 주된 활동은 공식·비공식적인 독립운동 자금 조달 임무였고, 이 와중에서 일본 경찰에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고생을 하였다.

출처:KBS 한국의 유산(www.kbs.co.kr/1tv/sisa/heritagekorea)

 

그리고 1931년 초 일곱 번째 상해로 망명한 이후 일제의 패망으로 1946년 환국할 때까지 주로 임정의 안주인 노릇을 하였다. 백범 김구와 이동녕, 이시영 등의 임정 요인들 가운데 선생의 밥을 먹지 않은 분이 없을 정도로 정정화는 정성을 다하였다. 그래서 많은 항일운동가들은 정정화를 임시정부의 어머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한 정정화는 그런 가운데서도 1940년에 독립운동 단체인 한국국민당·한국독립당 출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선생. 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로부터 이동녕, 박찬익, 김구, 엄항섭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43년에는 임시정부의 좌우통합 활동에 부응하여 여성차원의 민족통일전선인 한국애국부인회를 다시 세웠다. 정정화는 한국애국부인회에 참여하였고 나중에는 한국애국부인회의 훈련부 주임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또 정정화는 회고록 [녹두꽃]을 쓰기도 하였다. [녹두꽃]에는 정정화 선생의 삶에 대하여 써져 있었다. 정정화 선생의 회고록 [녹두꽃]에는

"독립운동은 총칼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만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자신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쟁취하려는 것이 독립운동이다."

라는 내용이 있었다. 정정화 선생의 독립운동 방법은 달랐었다. 여자의 몸으로는 힘으로 하는 독립운동은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정정화는 자신이 못하는 일이 있다는 것에 절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으려고 하였다. 뒤에서 조용히 독립운동을 하였다, 고 하지만 사실 정정화는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열성적으로 독립운동에 임했던 것이다.

또 선생의 회고록 [녹두꽃]이 정정화 선생의 독립운동 내용과 그때의 독립운동가들의 힘들었던 생활도 잘 알려줬다. 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에만 관심을 갖지 독립운동가의 삶 자체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알고 보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엄마가 해준 밥을 그리워하고 또 고문을 무서워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독립운동가들은 그러한 평범한 모습들을 넘어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정정화 선생에 대해 찾으면서 평범한 사람인 독립운동가들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었고 정정화 선생처럼 뒤에서 말없이 독립운동을 하는 방식으로 했던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이 많다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이렇게 정정화 선생은 나라를 위하여 열심히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1991년 11월 12일에 돌아가셨다.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정정화 선생의 독립운동 방법은 물론 같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눈에 띄는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열심을 다해, 마음을 다해 독립운동을 했는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의 업적뿐 아니라 그 마음 자체도 존경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 글쓴 감상

정정화 선생은 애국심이 다른 항일운동가보다 컸던 분이셨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끝까지 항일운동을 했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항일운동을 하던 중에서도 힘들어도 [녹두꽃]을 쓰셨다는 것을 알고 정정화 선생은 부지런했던 분이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정화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된 항일운동가들의 삶 역시 무척이나 인상깊었고,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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