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항일무명열사] 남영희 열사

작성일 : 2015-07-30 20:16 수정일 : 2015-07-30 20:16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남영희 (1905.12.30.~1989.12.24.)

1905년 12월 30일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났다. 조선의전 문학부인 수원고등농림학교 재학중에 건아단이라는 단체에 참가해 활동한다. 건아단은 1926년에 수원고등농림학교 학생 고재천, 김민찬, 김봉일, 김성원, 김익수, 김찬도, 남영희, 우종휘, 육동백, 황봉선 등 10여 명이 주축이 되어 여름방학을 이용해 농민 계몽을 통한 신사회 건설과 이상적 농촌 건설을 목적으로 조직된 항일 학생 비밀결사이다. 그들은 농촌사회를 개발하는 것이 독립운동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해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농민계몽에 힘을 쏟았고 수원 인근 마을에 농민야학을 설립하여 농민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활동을 전개하는데 이때 단군 연호를 사용한 것이 나중에 말썽이 된다.

1927년 9월 수학여행 도중에 강원도 등지에서 일본인의 대규모 농장을 보고 그 식민성 농장에 분개하여 민족농장 건설의 꿈을 키운다. 1928년 6월에는 일본 도쿄에서 결성된 조선농우연맹에 가입하여 ‘조선인에 의한 조선농촌개발’이라는 조선농우연맹의 주장에 합류하여 추진하기로 한다. 같은 해 여름에 조선농우연맹이 국내에서 지방강연을 하는데 이 때 건우단 단원인 한전종이 연사로 참석했다가 일본경찰에 검거돼 강연은 중단되고 한전종은 학교에서 무기정학 처분을 받는다. 건아단은 이 때 조직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계림농흥사로 이름을 바꾼다.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건아단 출신으로 김해공립농업학교에 교사로 근무하던 김성원이 학생들에게 항일의식을 심어 주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그러자 건아단은 1928년 여름에 계림농흥사라는 이름을 다시 조선개척사로 바꾸고 조직을 개편하지만 사건이 확대됨에 따라 건아단의 조직과 활동이 드러나게 되어 1928년 9월 15일, 남영희 열사를 포함하여 학생 11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조직이 해체된다. 열사는 농과 2학년 재학 중이었고 체포 당시 24세였다. 정부에서는 열사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아래는 1928년 9월 16일 동아일보 기사로 [수원고농교사건 진상]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사건의 전말을 보도하고 있다.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두산백과, 국가보훈처 공훈록,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사진 출처 : 네이버

 

 
{GROUP_sub_right}은 존재하지 않는 그룹디자인 입니다.
HOME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광고제휴   고객센터
아이틴뉴스(서울 아3212), 등록: 2014년 6월 24일, 발행인: 강이석, 청소년보호책임자: 강이석
서울시 서초구 바우뫼로41길 43 (양재동, 포커스빌딩) 2F 아이틴뉴스 Tel: 070-4799-1004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로 303 (안양동, 메쎄타워) 1309호 Tel: 070-7802-7777
Copyright ⓒ 2010 (주)유앤유미디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