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항일무명열사] 김락 열사, 독립투사의 어머니

작성일 : 2015-01-23 21:34 작성자 : 이제희 (mjjm1203@naver.com )

2014년 국가보훈처에서 발표한 독립유공자는 남성 13,509명, 여성 241명으로 남성의 비율이 훨씬 많지만 여성열사도 여러 단체에서 계속해서 발굴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는 항일무명열사 중 남성 유공자를 중심으로 연재했는데, 올해는 여성 열사를 연재할 계획이다.

 

김락(1863. 1.21 ~ 1929. 2.12)

(김락 열사 묘소,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김락 열사에 대한 고택관광뮤지컬 락 나라를 아느냐 공연, 안동국악단)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도사를 지낸 진린의 4남 3녀 중 막내딸로 안동시 임하면 내앞마을에서 태어났다. 18살 때 이중업과 결혼하여 2남 3녀의 자식을 낳는데 남편 이중업은 파리장서사건 때 파리평화회의에 보낼 독립탄원서를 작성한 인물이다. 이중업의 아버지 이만도 선생은 을미사변 때 안동에서 의병을 모아 일제에 항거한 분으로, 1910년 조선이 일본에 국권을 뺏겼을 때 24일간 단식하다가 순국했다. 1911년에는 오빠 김대락과 형부 이상룡이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해 만주로 떠난다. 이렇듯 김락 열사는 주변이 모두 독립운동을 하는 가족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만세시위에 당연하게 참가했을 것이다.

김락 열사는 58살이던 1919년 안동군 예안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가하는데, 예안시위는 3.1운동을 보고 돌아온 이동봉, 이용호, 김용택 등이 서울의 시위 소식을 전하며 추진된 것으로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1차는 3월 17일 오후 3시 30분에 선발대격인 30여명의 시민이 면사무소 뒤 선성산에 일본이 세운 '어대전기념비'를 쓰러뜨리는 것을 시작으로, 시장주변에 있던 3개의 시위대 100여 명이 일제히 시장을 향해 진격해 갔다. 시위대는 수비대까지 동원한 일본 경찰의 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이동봉의 인솔 하에 예안주재소로 몰려갔다. 하지만 주동자를 비롯한 15명이 체포되었고, 이로 인해 시위를 하던 군중들도 해산했다. 그런데 주동자들의 체포에 격분한 시민들이 오후 6시경에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다시 주재소로 몰려갔다. 경찰의 해산 명령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1,500여 명으로 늘어나고, 이들은 구금자들을 탈환하기 위해 돌멩이와 기왓장을 던지면서 주재소로 밀고 들어갔는데 이 과정에서 다시 25명이 체포됐다.

2차 시위는 3월 22일에 일어났는데 오후 7시부터 약 2천명의 시위 군중들이 태극기를 들고 동부동과 서부동, 선성산 위에서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발포로 13명이 부상을 입고 3명이 체포됐다. 김락 열사도 이 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되었는데 신문과정에서 받은 고문으로 두 눈을 실명하여 11년간 고생하다가 고통 속에 여생을 마쳤다. 그 와중에 아들 이동흠과 이종흠도 제2차 유림단 의거로 체포됐다가 김락 열사 서거 2년 전에 풀려난다.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두산백과, 국가보훈처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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